본격. 교육까는 블로그

woonyang.egloos.com

포토로그


사이드트윗



대한민국에서 유교란? 4-2 유교 -연재중

- 그래서, 유교는 남녀차별에 죄가 없다? -

앞의 포스팅에 이어서 갑니다.


대한민국에서 유교란? 4편에서 봤듯이, 공자님 자체는 딱히 남녀차별에 공헌하신게 없습니다.
그저 하신게 있다면 3가지,
시경을 널리 읽게 하셨고,
이야기 하시다가 '소인배는 여자만큼이나 다루기 힘들더라'라고 하소연 하셨고(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틀려짐),
태산에 놀러갔다가 노인이 즐거운 이유에 동조한것 밖에 없...

써놓고 나니 참 별볼일 없지만, 이 세가지가 가져온 파장은 이루 말할 수 없죠.









사실 공자님이 직접 잘못하신건 한 가지입니다. 소인배를 여자에 비유하신것.
물론 해석에 따라 다릅니다만, 아무리 읽어봐도 '소인배는 참 다루기 힘든데, 마치 여자와 같다.'정도로 밖에 해석이 안됩니다.


근데 솔까말 여자분들 생각하기에, 스스로 안 섬세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물론 좋게 말해서 섬세한거고, 나쁘게 말하면 까탈시럽다-ㅅ-...라고


사실 이건 남녀의 생각의 문제인데, 간단하게 풀어 봅시다.








하지만 역시 아쉽습니다. 아무리 여자꼬시기사귀기가 힘드셨더라도 공자님 스스로 말조심을 좀 하셨다면 후대의 유생들이 여자와 소인을 동일시 여기는 바보같은 짓은 안할 수도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공자님을 그렇게 어렵게 만든 여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그 여인 덕분에 천년이 넘게 유교제도 아래의 여자들이 핍박받고 살아야 했다니.

이렇게 살펴보니 또 공자님이 원망스러워집니다.
하여간 그놈의 입방정이 뭔지....그걸 또 그대로 기록한 제자들도 참 융통성 없습니다 그려. 오덕스토킹수준인듯
[하악하악. 우리 스승님의 침튀기는 소리 하나까지 기록할거라능 하악하악]


나머지 두개는, 역시 해석의 잘못입니다.

특히 열자(列子)의 천서편은 도교의 책인데도 불구하고, 단순히 공자가 한 선문답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과대평가된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사실 한자라는게 표의문자라서,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천지차이입니다.
예를들어 '남존여비'라는걸 단순히 직역하면 '남자는 높고 여자는 낮다.' 라는 뜻이죠.

해석은 다양합니다.
남자는 하늘(陽)이고 여자는 땅(陰)이다. - 음양적 해석
남자는 권력으로써 행하니 높고, 여자는 가사로써 행하니 낮다 - 사회적 역할 해석
남자는 (거시기가)높고, 여자는 낮다 - 신체적 특징으로 해석 <-퍽

등으로 해석 해 볼수 있죠.
[도대체 어떻게 '남자는 존귀하고 여자는 비천하다' 라고 해석 했는지...]











사실 이 문제는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해석 된 것으로 보는게 알맞은 방법입니다.
실제로, 글공부=남자, 가사일=여자 라는 사회적 분위기는 이런 오해를 만들기에 충분했죠.

고대의 '글공부'라는 것은 공무원이 된다는 의미와 일맥 상통했습니다.
문자를 다루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자와 그를 보좌하는 신하 및 공무원 등이 하는 것이었죠.

이건, 신체적인 차이로 말미암은 사회적 역할분화와도 맞물리게 되는데,
애를 낳고 돌보는 입장에서는 글공부를 하여 관리가 되는건 매우 비효율적이었죠. 그에 비해 남자들은 자유로웠죠. 자연적으로 바깥양반과 안주인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나 태클에 대비. 이 차이의 시작은 역시 '젖을 물리느냐 안물리느냐'의 차이겠습니다. 분유도 없던 시절에 여자가 나가서 일을하고 남자가 집을 지키며 가사일을 한다고 해도, 애 젖도 못먹이는데 남자가 집에 남아서 애를 볼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럴바엔 젖을 안먹여도 되는 몸인 남자가 그 일을 대신 하는게 효율적이죠]



그런 상태에서 공자님이 이런 좋은 떡밥을 날려주시니, 식자들은 좋아 죽을 지경입니다.
여자는 글을 몰랐으니 마음껏 왜곡해주면 되는거죠=ㅅ=...









이제 후손들은 마음껏 왜곡하시는 일만 남았습니다.

간단한 예를 볼까요?


칠거지악









부부유별(夫婦有別)도 역시 해석떡밥.








결국 이 유교가 사회적으로 남성들로부터 여성을 지배하는 도구로 왜곡, 이용되어온 것이죠.
거기에 대한 배경이 바로 '글자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인 것이구요.
중국 고대 사회나 조선시대나 마찬가지입니다.
여성이 사회적인 역할 분담으로 인해 글을 배우지 못하는 것이, 남성들로부터 악용된거죠.



조선사회에서 사대부들이 한자를 미칠듯이 고집했던 이유중 하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성들의 지식이 늘어나고, 그동안 남자들만 알던 것을 여자들이 알게 됨으로서 그들의 세력이 강해질 것을 두려워 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거기까지 생각 못하고, 그저 떡밥물고 안놓았을뿐일 가능성도 있지만]

실제로 세종 이후에 사대부여성들은 '언문'을 사용했지만, 편지라던지 소설 따위에 이용될 뿐, 실질적인 지식의 습득에는 별로 도움이 되질 못했죠.
만약 사서오경, 공자가어, 불교경전등이 '왜곡이 없는 정확한' 한글언해가 되었다면, 그래서 여성을 포함한 모든 전 백성이 유교를 접할 수 있었다면, 조선시대의 사회는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사대부를 증오하는 여러가지 이유 중 하나가 한글을 배척한 것]



현대의 한국 사회는 한글이 널리 통용되고 있죠.
세계에서 가장 쉬운 글자라고 평가 받고 있고, 유네스코에는 문맹을 퇴치한 공로로 주는 '세종대왕문해상(King Sejong Literacy Prize)'도 있습니다. 한국의 문맹률은 세계최저를 자랑하죠. [아직 0%는 아니랍니다]

그리고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지금도 '한자'사용으로 인한 많은 문제가 있죠.
얼마전에 이글루스 떡밥으로 돌았던 '서거냐 자살이냐 사망이냐' 떡밥처럼요.












왠지 결론이 '한글 찬양'으로 넘어가고 있는듯 합니다. 원주제로 돌아가죠.
결국 유교를 기반으로 한 남녀 차별은, '왜곡'과 '국가이념'이라는 두 과정에 의해 발생 된 결과라는거죠.
요즘은 오히려 여성분들이 더 득세 하고 있는건, 천년동안 쌓아온 남성들의 업이 아닐까 생각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또 다른 떡밥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긴 글 읽어 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덧. 사실 연애밸리로 보내려다가, 잘못했다간 페미니스트분들이나 남녀차별지상주의분들에게 우왕하고 물릴거 같아서 역사 밸리로...]

덧글

  • 백면서생 2009/06/03 12:33 # 답글

    좋은 지적입니다. 교육이 큰 역할을 했지요. 조선시대야 아예 기회 자체가 봉쇄되어 있었고, 현대에는 기회는 형식적으로 주어졌으되 실질적으로 불균등하게 주어져 왔다고 봐야겠네요.
  • 운향목 2009/06/03 12:54 #

    현대는 분명 기회가 균등하기 때문에 여성도 얼마든지 권리를 챙길 수 있지만,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다는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원인으로는 교육, 아버지 세대의 가부장적 사고방식들과 오랜 기간동안의 남성위주의 사회지속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나는 '지나친' 페미니즘 따위가 있겠습니다.

    이 지나친 페미니스트들 덕분에 '여성주의'라는 사고 자체가 혐오되기도 하는 걸로 봐서는, 여성사회 내에서도 페미니즘에 대한 정확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랄까 결국 답은 교육..OTL
    [정치고 뭐고간에 역시 교육이 제일 중요한듯싶습니...]
  • highseek 2009/06/03 13:33 # 답글

    뭐 한자를 고집해서 교육의 기회를 막은 건 비단 여성 뿐만이 아니었죠. 일부 소수 특권층인 사대부 계층 외에는 실질적인 기회가 없었으니.. 있다 해도 차단당하고 말이죠. 언어는 언제나 기득권을 유지하는 수단이었죠.

    유럽에서 라틴어를 모르면 학계에서 인정해주지 않던 거랑 비슷하지요 :)

    우연히 들렀습니다. 반갑습니다.
  • 운향목 2009/06/03 14:07 #

    들러주셔서 갑사합니다.

    그런면에서 한글의 발명은 정말 획기적을 넘어서 인류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죠.(특히 교육적인 면에서 크게 기여 했죠.)
    외국의 언어학자들조차 한글덕후들이 많은걸 보면-ㅅ-...
    다만 한글이 과학적이고 쉽지만, 한글은 그다지.....;; 언어의 구성 자체는 다른언어에 비해서 과학적이긴 하지만, 한자와 외래어 사용으로 엉망이된 상태..

    모택동이 문자혁명을 하면서 로마자와 훈민정음중 어느걸로 할지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떡밥은 과장된건 아닌듯 싶습니다.
  • 霧影 2009/06/03 19:40 # 답글

    ....음. 이거 좀 까야 되려나...?
    조선 초-중에는 사대부 여성에게도 공부가 개방은 되어 있었고, '기생들' 역시 한문은 공부했지.
    대표적으로 우리가 현모양처의 1순위로 꼽으시는 신사임당. 이분은 집안 자체가 '외가의 빠와-즉, 어머니들의 빠와가 강한'가 강한 집안이었어. 내가 책을 한권만 봐서 이게 진리라고는 말 못하겠지만.
    어쨌든 사대부 여성들도 어렸을때는 '남자 형제들과 같이 글을 배우는' 경우가 꽤 있었던가 보더라. 그래도 여성들이 자기들이랑 좀 맞지 않았는지 다른 쪽으로 세어버린거고.
    허난설현 같은 경우는 형제들이 시집가서 박복하게 사는 걸 보면서 학식이 아깝다고 하기도 했고, 김금원 같은 경우는 부모를 졸라서 처녀의 몸으로 금강산 유람까지 하고 오지

    강정일당 같은 경우는 '남편에게 글을 가르쳤고', 부인이 죽자 남편이 부인이 쓴 글을 모아서 문집을 내는데 발문에 당대 노론의 대학자급에게 써달라고 할 정도니까.
    임윤지당이란 분은 평생을 중용을 읽으면서 자신의 견해를 적어 '중용경의'란 책을 쓰기도 했는데, 막히는 게 있으면 오라버니에게 편지를 보내 물어보기도 했는데, 낮에는 집안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셨다니.. 머엉(.....)

    뭐, 기생들이야 양반네들이랑 항가항가 하며 노닥대려면 교양으로 익히는 거고, 해봤자 '웃어라 즐겨라 놀아라'같은 분위기가 많으니까 'ㅅ` 넘어가자.

    뭐, 말이란 게 얼마나 중요한가. 마르크스 책만 봐도 나오잖아. 분명 같은 말인데 마르크스가 어려운걸 쉽게 썼더니 빡돌아서 마르크스빠가 우르르 생겨난걸 보면...(독일어 원전의 경우 어려운 개념들이 상당히 쉽게 쉽게 쓰여있다더구만)
  • 운향목 2009/06/04 12:49 #

    이건 까는게 아니라 테클 아니냐 <-그게그거

    랄까 뭐...우리가 그 시대에 살았던건 아니니까 몇%나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아녀자들이 언문을 쓰던 비중과 한문을 쓰던 비중의 퍼센테이지를 비교해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겠다만.. 불가능 하려나

    사실 공부하셨던 부인들이 합심하여 동네 아녀자들을 교육하고 유교에 대해 바른 이해를 하게 했다면 생각자체는 변할 수 있었겠지.
    다만, 전제군주제에서 여자가 권력을 잡는게 가능했었을런지는 의문.
    가능했다고 해도 방해 세력이 많았을터. 그럴바엔 차라리 그냥 군소리 없이 사는게 현명하다는것을 공부하신 사대부 여성들이 깨달았던 걸른지도 모르지
  • 작은너구리 2009/06/04 14:56 #

    지나다 흘깃 보고 한 마디 남기고 갑니다.

    님이 말씀하신 분들은 모두 '그래서 유명해진' 분들입니다.
    반대로 남자분들 중에 글을 배운 사람들 명단을 읊어보시죠.
    총각의 몸으로 금강산 유람을 하신 분도요.
    신사임당의 경우는 그당시 너무도 유별난 '처가살이'를 남편에게 시킨 분이기도 합니다.
    혹시 신사임당의 남편, 즉 율곡선생 아버지 성함 기억하십니까?

    흔하지 않은 케이스를 들어 흔한 케이스를 뭉뚱그려 일반화시키는 논리는 곤란하다고 봅니다.
  • 운향목 2009/06/04 15:03 #

    우웃;;;
    너구리님. 리플 감사합니다.

    일단 잠깐 설명을 드리자면, 霧影이라는 블로거는 일단 제 8년지기 친구입니다;;;
    리플의 내용 자체는 그저 '이런 사례도 있더라'라는 식으로 저에게 알려주는 것 뿐이니, 너무 기분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시한번 제 글과 리플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주 놀러오시길 바랍니다 :D
  • 霧影 2009/06/04 21:57 #

    뭐.. 작은너구리님이 말씀하신것이 맞기야 하지요 'ㅅ'.
    여성이 세상에 구박받으면서 살아오고 출세하지 못한 것은 동서양 둘 다 19세기까지 계속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완전히 틀혀박혀 살지만은 않았다는 취지로 적긴 한 겁니다. 그런 세상에서 자기 뜻을 편 대찬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주목해야 할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도 양란 일어나기 전까지는 조선시대의 사대부 집안에서는 딸에게도 글을 가르치고, 딸이 뛰어남을 탄식하는 경우들이 좀 있었던가 봅니다. 아들로 태어나면 입신양명인데, 딸이라 한계가 있구나.. 하며 낙심하죠.

    덧. 신사임당 남편은 이원수, 신사임당의 아버지는 신명화인데.. 어머니의 경우 그냥 '이씨 부인'이라고만 되어있네요. 가지고 있는 자료가 그리 없는지라(털썩)
    역사쪽은 취미로 조금 건드리는 영역인지라, 그렇게 깊숙하게 이것저것 뒤지지는 못하고 있어 글이 좀 잘못된 부분은 사과 드립니다.

    운향목 / 조선시대에 백성을 대상으로 언문으로 법을 읽어줘서 가르친 일은 있었다지만.. 그게 아녀자한테까지 영향이 갔는가는 모르겠네. 일단 방을 붙이는 것 비슷하게 하지 않았나 추측만 한다만..-_-a
  • -_- 2009/11/17 04:23 # 삭제 답글

    열자에서 인용한 내용은, 단지 남존여비의 어원이상의 의미가 없지요. "남자가 존귀하고 여자가 비천한 (당시)사회에서 남자로 태어나 운이좋다." 라고 말한걸 곧이곧대로 유교이념의 철칙으로서 생각할 학자들은 없었을 겁니다.
  • 김지 2013/11/01 15:25 # 삭제 답글

    칠거지악, 삼종지도 이런 것들은 다 유교에서 나온 개념들 아닌가요? 이런 개념들이 공자의 말을 오독했기 때문에 생겨난 거다 이말씀이신가요??
  • asdf 2015/01/05 19:52 # 삭제 답글

    이런 말이 있더군요

    유교는 처음부터 거짓을 안고 출발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지만 유교의 씨앗은 쿠데타로 왕권을 잡은 조갑이라는 한 중국인 사내의 정치적 탐욕을 감추려는 목적 아래 뿌려진 것이었다. 기원전 1,300년경 황하 유역에서 일어난 이 사건의 현장을 우리는 고대 동양 문화의 실록인 갑골문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 후 이 정치적 사건은 교묘하게 도덕적으로 위장되어 전해오다가 공자라는 한 사나이에 의해 후대에 전해졌다. 물론 그 당시 공자는 사건의 내면에 숨겨진 불순한 문화적 코드를 읽어내지 못한 채 도덕만을 외쳐댔다.
    그 결과 현란한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공자의 도덕은 '사람'을 위한 도덕이 아닌 '정치'를 위한 도덕이었고, '남성'을 위한 도덕이었고, '어른'을 위한 도덕이었고, '기득권자'를 위한 도덕이었고, 심지어 '주검'을 위한 도덕이었다. 때문에 공자의 도덕을 딛고 선 유교 문화는 정치적 기만과 위선, 남성적 우월, 젊음과 창의성의 말살, 그리고 주검숭배가 낳은 우울함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댓글 입력 영역